생명의 강은 흘러야 한다 글/사진·박남준 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마치며 날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해보지 않았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강을 따라 걸어온 길과 걸어갈 내일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 순례의 길을 시작합니다. 아무 탈 없이 잘 마무리하게 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순례단이 오늘 하루 잘 걸어왔습니다. 제 눈을 통하여 당신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이 보시기에도 참 아름답지요. 이 수많은 뭇 생명들 살아 숨 쉬며 흐르는 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농지확보를 위해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명들의 보고인 갯벌을 메우고 간척을 하겠다던 새만금에는 대규모 골프장이다 뭐다 위락단지가 들어선다고 하고, 이제 또 온 나라의 젖줄인 물길을 파헤치고 뚫어 경제성도 검증되지 않은 물류수송과 뱃놀이를 위해 운하를 만든다고 합니다. 지난 2월 12일부터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일원으로 함께 참여해서 세칭 대통령당선자 ‘이명박표 운하’ 건설 예정지를 순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인’같지 않고 ‘자’같거든요. 입춘, 우수가 지났다고 하지만 한강 하류 김포 애기봉 조강나루에서부터 시작한 순례의 길 걸음이 매운 강바람 때문에 조금은 힘이 듭니다. 느릿느릿 하루에 대략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는데 여의도를 지나 잠실을 지나 순례 8일째 벌써 서울을 빠져나왔습니다.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댐 아래쪽 남한강변을 걷습니다. 목이 긴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자태를 가진 고니들과 흰 비오리와 흰뺨 검둥오리들과 청둥오리 떼가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거나 먹이를 찾아 자맥질을 하는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입니다. 강 곳곳에는 또한 모래톱들이 쌓여서 거기에 갈대와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작은 작은 섬들이 남쪽 바다 다도해를 떠오르게 합니다. 보기에 참으로 좋아서 자꾸 발길이 멈춰집니다. 어찌 그냥 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팔당댐에 이르렀습니다.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수심이 얕으나마 물이 흘러 얼지 않는 강과는 달리, 댐으로 인해 가두어진 물이 발 아래 보이는 곳에서부터 저 끝 아스라이 먼 곳까지 온통 얼어있기 때문입니다. 꽁꽁 얼음이 얼어 있는 곳에서는 헤엄을 칠 수도 먹이를 찾을 수도 없었겠지요. 만일 운하가 들어선다면 그 많은 크고 작은 보와 갑문 (운하 추진위의 발표대로라면 수중보 16개, 갑문 19개)에 가두어진 물이 겨울에 얼지 않을 까닭이 없윱求? 기후대가 변하여 우리나라도 이제는 건기와 우기로 구분해야 한다는 기상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수량이 현격하게 부족해지는 겨울철 건기나 홍수 위험이 있는 여름철 우기에 운하가 과연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면 물이 꽁꽁 어는 겨울철에는 끊임없이 쇄빙선을 띄워 얼음을 깨야 하며 또한 부족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지하수를 파서 끌어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만에 하나라도 벌어진다면 인근 모든 마을의 지하수 자원이 고갈되어 식수원은 물론이고 경작할 수도 없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릴 것이 자명합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산을 헐거나 뚫고, 운하가 건설될 예정지에 상수원이 있으면 상수원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우회도로를 만들 듯이 빙빙 에둘러서 건설하겠다는 것이 당선자 측의 발상이며, 반대하는 의견들에 대한 참으로 무지한 대책인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어리석고 무식한, 정말이지 대책이 안 서는 대책입니다. 얼마 전 2월 14일자 신문에 실린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보았습니다. 낙동강 일대를 가 보았는데 이미 수질 오염이 심하여 강이 죽어가고 있으니 운하를 만들어서 수질을 개선하고 홍수 피해를 막으며 물류수송과 주변 문화유적을 복원하여 50년, 100년 뒤에도 길이 남을 이 나라 유일한 세계 관광 상품을 만들겠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말문을 잃습니다. 이게 한 나라의 지도자급 인사라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할 말입니까. 막말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욕설을 다 퍼부어도 화가 풀리지 않습니다. 강물이 왜 오염이 되어 죽어가고 홍수 피해는 왜 발생하고 있습니까.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 아닙니까. 물길이 들고 나며 많은 물을 가두어 놓을 수 있는 논이나 저습지를 메워 물이 스며들 수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내고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은 것도 상습적인 홍수 피해를 불러일으킨 커다란 잘못입니다. 또한 공장에서 거의 독극물에 가까운 중금속 화학물질을 무단 방류하고 정화 처리되지 않은 생활 오폐수를 바로 강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모자라 강물이 많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곳곳에 수많은 수중보를 막고 강 하류에는 대규모 하구언을 만들어 생명의 강물이 강물로 흐르며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 아닙니까. 적반하장이 따로 없지요. 그런 일을 자행하며 뇌물을 받아 눈감아 주고, 하천정비를 핑계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여 팔아먹고, 마구 파헤쳐진 강이 보기 싫다고 또 수중보를 막는다, 강변을 온통 시멘트블록 구조물로 뒤덮어 모래사장과 습지식물을 살 수 없게 만든 주범들이 바로 누구였습니까. 잘못된 하천정책을 실시한 몰상식한 정치가들과, 그런 일들을 악용한 부패한 관료와, 이들과 결탁해서 국민의 세금을 착취하여 검은 부를 축적한 악덕 토목건설업주들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만인의 규탄을 받을 짓을 한 자들이, 생명의 강이 스스로를 정화하며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든 자들이, 말도 안되는 주먹구구식의, 이 나라를 온통 죽음의 재앙으로 몰고 갈 운하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분신이라도 해야 합니까. 어찌 그냥 혼자 끙끙거리며 전전긍긍하고 가슴을 치며 화풀이 술로 이런 후세에 길이 남을 끔찍한 만행을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원으로 나선 이유입니다. 이 야만은 어디에서 왔나 이제 손짓하는 강 언덕에 서서 바람의 춤을 추던 억새며 갈대밭들 흔적도 없어질 것이다 하늘거리며 푸른 숨을 쉬던 강물 속 물풀들은 숨이 막혀 사라지고 금모래, 은모래는 옛날의 기억으로만 쓸쓸하게 남을 것이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와 하늘을 비상하는 가창오리 떼, 새들 새들은 어디로 그 어디로 떠나갈 것인가 모래무지와 쉬리와 흰수마자와 저기 맑은 조약돌과 모래톱에 산란의 몸 부풀던 물고기들에게 어떤 희망이라는 내일이 찾아올까 주검이 되어 떠다닐 것이다 어쩌자는 것이냐 누가 대체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냐 산허리를 잘라 철조망을 치고 이쪽과 저쪽, 앞산과 옆산을 뒷산과 그 앞강을 생명의 이동통로를 막아버린 거미줄 같은 도로망과 죽음의 갯벌 새만금으로도 정녕 모자란단 말이냐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냐 운하를 파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냐 모든 경제가 파탄될 것이란 말이냐 산을 뚫고 들판을 자르며 강바닥을 파헤쳐 이 나라를 온통 재앙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적인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냐 갈대숲과 모래사장이 있는 강길을 따라 걸었다 그 풍경으로 인해 즐거웠으나 미안해, 미안해요 마음 편치 않았다 걸음 걸음마다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거나 햇살에 몸을 말리며 단잠 꾸벅이는 새들의 안방을 방해했다 여겼기 때문이다 갈대숲과 모래사장을 없애고 콘크리트 성벽으로 높이 쌓아올려 분단한 강 길을 따라 걷는다 풍경은 삭막했으나 미안한 마음 일지 않았다 날아오를 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강가로는 새들이 찾아오지도 깃들어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 된다 이렇게는 안 된다 너희가 무슨 오만한 권리가 있어 강물을 사리사욕으로 바꾼다는 말이냐 운하는 악몽이어야 한다 잠 깨고 나면 다시 새들이 날고 알록달록 조약돌을 간질이는 맑은 물결이 찰랑거리며 은빛 모래밭과 갈대들이 너울거리는 평화와 고요한 아침이 오는 한바탕 악몽이어야 한다 수많은 수중보와 갑문으로 막혀 가두어진 채 썩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들이 반짝이는 자맥질을 하며 흐르는 숨 쉬는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탐욕과 무지몽매와 기만으로 뒤덮여 죽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함께 춤추는 푸른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운하개설은 이 땅의 내일에 참혹한 대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이나 회사도 아닌 국가에서 추진하겠다니요.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막아야 합니다. 단호히 막아야 합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측근들이 잘못된 판단과 계산으로 내놓은 대선공약에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운하문제를 깨끗이 철회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갖추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땅의 젖줄,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나무들의 숲과 모든 조화로운 자연이 만들어준 선물, 생명이 흐르는 강은 어느 누구의 것도, 이렇게 막나가는 대통령의 것도 아닌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남준 님은 맑고 소박하게 흐르는 섬진강 악양마을에 살고 있는 시인이다. 그이는 나무의 마음으로 시를 쓰고 글을 쓰며 작은 풀꽃에게 안부를 묻는다. 지난달 ‘경부운하’를 막기 위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순례길에 나섰다. 시집으로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꽃이 진다 꽃이 핀다》를 냈고, 지난해 낸 시집 《적막》, 지난 가을에 낸 산문집 《박남준 산방일기》가 있다.